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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스탄게츠 stanley Gayetzky

by 볕날선생 2020.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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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재즈 연주자. 주로 연주한 악기는 테너색소폰. 조부가 우크라이나 이민자였고 따라서 성도 우크라이나 성인 Gayetsky 였다. 하지만 프로 연주자로 활약하면서 Stan Getz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출생지는 필라델피아지만 성장은 뉴욕에서 했다. 어린 시절 우등생이었다고 한다. 6학년을 마칠 당시에 거의 탑 클래스였다고. 하지만 음악에 관심이 많았고 13세때 색소폰을 접한 이후 평생 이 길로 가게 된다. 16세에 당시 인기있던 밴드인 "잭 티가든 밴드"의 색소폰 주자로 입단하면서 프로 연주자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한다. 1950년대에 접어 들면서 자신이 참여하는 세션의 대부분에서 리더가 될 정도로 촉망받는 연주자가 되었다. 소리의 결이 아주 곱고 부드러우며 격렬한 즉흥 연주를 할 때에도 거친 면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게츠 특유의 소리도 이 때 완성이 된다. 여담으로 이 사람의 별명이 "The Sound"다. 존 콜트레인이나 소니 롤린즈처럼 음악적으로나 연주 실력으로나 게츠를 능가하는 연주자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게츠와 같은 소리를 내진 못 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다. 그러나 50년대 중반부터 재즈의 인기가 미국에서 급전직하하면서 그나마 시장이 유지되던 유럽으로 가서 연주 생활을 하게 된다. 게츠의 경우 주로 북유럽의 재즈 클럽들에서 연주를 했다고 한다. 사실 이런 일은 게츠에게만 벌어진 것은 아니었다. 재즈계의 제임스 딘으로까지 불리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쳇 베이커나 비밥시대의 거장인 듀크 조던, 잘 생긴 외모와 뛰어난 테크닉으로 인기를 끌었던 덱스터 고든등 한다하는 연주자 대부분이 유럽으로 원치 않는 이민을 떠나야 했다. 게츠는 1961년 미국으로 돌아오는데 이 때 우연한 계기로 인해 대박을 터뜨리게 된다. 브라질에서 연주 여행을 하면서 보사노바의 매력에 흠뻑 빠진 기타리스트 찰리 버드와 Jazz Samba라는 앨범을 내는데 이 앨범이 대박이 터진 것이다. 이후 게츠는 보사 노바의 아버지인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보사 노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보컬리스트라고 불리는 조앙 질베르토, 그의 아내이자 훗날 솔로가수로도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되는 아스트루드 질베르토와 함께 협연하면서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 시절의 성공 때문에 종종 게츠를 보사노바 뮤지션으로 분류하는 경우도 많은데, 기실 게츠가 보사노바를 했던 시절은 길지도 않고 음반도 많지 않다. 90년대에 Verve에서 Bossa Nova Years라는 게츠의 보사노바 시절을 총망라한 컴필레이션을 발매했는데 그 분량이 꼴랑 CD 4장이었다. 이후 상업적으로는 크게 성공하진 못 했지만 연주 활동을 정력적으로 이어가던 그는 1990년 간암 판정을 받고 1991년 사망한다. 그런데 연주자로서는 성공한 삶을 살았지만 인간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못 했다. 10대때부터 마약과 알코올에 중독되었고 매우 이기적이어서 주변과의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가족(아내와 딸)에게도 매우 폭력적인 아버지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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