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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존 매케인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이 2018년 8월 25일(현지시간) 별세하다.

by 볕날선생 2018.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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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뇌종양 판정을 받고 투병해온 존 매케인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이 25일(현지시간) 별세했습니다. 향년 82세. 참전 해군 출신인 매케인은 1986년부터 32년간 애리조나주 상·하원 의원을 역임했습니다. 원칙을 준수했고, 때로는 당론을 거스르며 소신을 지켰던 그는 공화당의 ‘이단아’이자 합리적인 보수주의자로 평가받았습죠.

매케인 의원은 1936년 8월 29일 파나마운하의 미 해군항공기지에서 해군 장교 존 매케인 주니어와 로버타 매케인의 셋째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조부(존 매케인 시니어)와 부친이 모두 해군인 집안에서 태어난 매케인 의원이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습니다. 학창 시절 그는 역사와 문학을 좋아하지만 수학은 낙제만 간신히 면했던 전형적인 ‘문과생’이었죠. 교칙에 복종하지 않았고 계급이 높은 인사들과 종종 충돌해 좋은 성적을 받지 못했습니다.

1958년 사관학교를 졸업한 매케인 의원은 해군에 소위로 임관해 전투기 조종사 교육을 이수했습니다. 조종 실력은 형편없었는데, 결혼 전인 1960년대 초중반 세 차례의 충돌 사고를 일으켰습니다. 1965년 첫 번째 부인 캐럴 셰프와 결혼한 매케인 의원은 전투 부대에 배치돼 베트남으로 파병되었습니다. USS 포레스털 함에서 A-4 스카이호크스 조종사로 복무하던 중 134명의 목숨을 앗아간 폭발 사고가 함상에서 발생했는데, 매케인 의원은 간신히 생사의 고비를 넘었으나 두 달 후 하노이 폭격 임무를 수행하던 중 비행기가 격추돼 북베트남군에 포로로 붙잡혔습니다. 이 때 당했던 고문후유증으로 그는 평생 한 쪽 다리를 절게 됩니다.

전쟁이 진행되며 수세에 몰린 북베트남은 매케인 의원의 아버지가 통합전투사령부 태평양사령관이라는 사실을 알고 협상용으로 석방 카드를 내밀었습니다. 그러나 매케인 부자는 포로는 붙잡힌 순서대로 풀려나야 한다는 원칙과 선전용으로 이용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석방을 거부합니다. 이런 일화들 덕분에 매케인 의원은 원칙을 지키는 전쟁 영웅의 이미지를 얻고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1973년 석방된 그는 미국으로 돌아와 1980년 신디 루 헨슬리와 재혼하고 1981년 대령으로 퇴역했습니다. 1982년 중간선거에서 애리조나주 제1선거구 공화당 하원의원으로 당선되며 제2의 인생을 시작했는데, 1984년 재선에 성공했고 1986년 애리조나주 상원의원에 당선됐습니다. 보수적이었으나 당론을 무작정 따르지는 않아 이단아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중진으로 자리잡은 그는 2000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1999년 9월 후보 경선 도전을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당의 전폭적 지원을 받았던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에게 패배해 2000년 3월 경선에서 하차했고, 상원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부시 행정부 초반 매케인 의원은 이단아의 면모를 유감없이 선보였습니다. 기후 변화, 총기 규제, 세제 개편 등을 두고 부시 대통령과 대립했는데, 2001년 5월 부시 행정부의 부자 감세안에 반대한 공화당 상원의원 2명 중 하나가 그였습니다. 그러나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한 후에는 아프가니스탄전과 이라크전 등 군사작전을 적극 지지했습니다.

매케인 의원은 2008년 공화당 대선 후보로 선출됐고 세라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를 부통령 후보로 선택했습니다. 다수당 대선 후보 중 여성을 러닝메이트로 정한 것은 1984년 월터 먼데일 당시 민주당 후보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본선에서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에게 패배한 그는 상원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비판자로 활동합니다. 2009년 경기부양책과 오바마케어에 반대했고, 첫 히스패닉계 여성 대법관인 소니아 소토마요르 지명에도 반대했습니다.

2011년 개원한 112대 의회에서 상원 군사위원회에 배정된 매케인 의원은 같은 해 리비아 내전 당시 미국의 정치적·군사적 개입을 요구했고 시리아 내전에도 미국이 군사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2013년 5월 미 상원의원 최초로 시리아 반군을 방문하기도 했는데, 그는 2016년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대선 후보가 도널드 트럼프일지라도 지지하겠다”고 밝혔으나 “트럼프는 국가안보 이슈에 무지하다”는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 후에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던 매케인 의원은 2017년 7월 악성 뇌종양의 일종인 교모세포종 진단을 받았습니다. 병원 측은 수술과 치료 후에도 14개월 정도밖에 살 수 없다는 시한부 선고를 내렸습니다. 종양 제거 수술을 받은 매케인 의원은 주요 안건 표결에 참여하는 등 상원의원직을 수행했으나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지난 5월 회고록을 통해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가치를 못 지킨 인물이라고 주장했고, 7월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헬싱키 정상회담에 대해 미국 대통령으로 가장 수치스러운 실적이라고 비판한 바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매케인 의원의 별세 소식이 알려진 뒤 오후 5시 44분 트위터 계정에 글을 올려 "매케인 의원의 가족에게 가장 깊은 연민과 존경을 전한다"며 "우리의 마음과 기도가 당신과 함께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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