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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호안 미로가 누굴까? 오뚜기 진라면을 먹으면 보이는 호안 미로 (Joan Miro)의 작품.

by 볕날선생 2020.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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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 가장 존경 받는 화가 가운데 한 사람인 호안 미로는 고향인 바르셀로나의 프란시스코 갈리 미술아카데미에서 수학했다. 미술과 함께 사업을 공부하기도 했던 그는 원래 사업가가 될 생각이었지만, 심각한 신경쇠약을 겪으며 인생의 진로를 바꾸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들이 화가가 되는 것을 극구 반대했던 미로의 부모도 결국 뜻을 꺾고 아들이 원하는 길을 가도록 허락해주었다. 미로는 야수주의와 입체주의, 그리고 초현실주의에서 모두 영향을 받았다. 그는 각각의 양식에서 다양한 요소들을 받아들여 자신만의 개성 있는 양식을 만들어냈다. 그의 작품들은 짙은 밝은 색채와 추상적인 형태들이 특징으로, 언뜻 보기엔 소박하고 원시적으로 보이지만, 좀 더 면밀히 관찰해보면 훨씬 더 복잡하고 예술적임을 알 수 있다. 그는 회화뿐 아니라 에칭, 동판화, 조각, 석판화, 그리고 컬리그래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1920년대에 미로는 파리에서 활동했다. 당시 파리는 미술의 중심지로서, 그는 그곳에서 파블로 피카소와 친분을 쌓았고, 초현실주의 운동에도 참여했다. 그는 고향인 스페인으로 돌아와 몇 년간 지내다가, 스페인 내란이 일어나자 파시즘을 피해 다시 파리로 이주했다. 1937년에 미로의 작품이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전시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나치가 파리를 점령하자 미로는 이번에도 파시즘을 피해 다시 피난을 가야만 했다. 이렇게 해서 그는 1940년에 스페인으로 돌아왔다. 1941년에 그의 작품 전시회가 뉴욕의 근대 미술관에서 열렸는데, 이를 계기로 그는 난생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1956년 미로는 평소에 꿈꿔왔던 마요르카의 팔마 섬으로 이주했다. 파리에서 지냈던 젊은 시절에는 음식을 사먹을 돈도 한 푼 없었지만, 이제 꿈에 그리던 자기의 집을 갖게 된 그는 자신이 얼마나 먼 행로를 걸어왔는지를 실감했다. 미로에게 헌정된 미술관들이 바르셀로나와 마요르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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